美, 韓 '환율 관찰국' 재지정…국민연금의 외환개입 경고

통상협상서 압박 수단 관측

외화 매입·통화 스와프 언급
"시장 간접개입 면밀히 조사"
미국 정부가 한국을 ‘환율 관찰대상국’으로 재차 지정했다. 국민연금을 통해 간접적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했는지 조사하고, 불공정 환율 관행에는 관세를 포함해 활용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을 총동원하겠다고 경고했다. 현재 이뤄지는 통상·환율 협상에서 한국 정부를 압박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 재무부는 5일(현지시간) 의회에 보고한 ‘주요 교역 대상국의 거시경제 및 환율 정책’ 반기 보고서에서 한국 중국 일본 등 9개국을 환율 관찰대상국으로 지정했다. 작년 11월과 비교하면 아일랜드와 스위스가 관찰대상국에 추가됐다. 한국은 2023년 11월 환율 관찰대상국에서 빠진 뒤 작년 11월 다시 리스트에 포함됐고, 이번에 재지정됐다.

이번 보고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뒤 처음 나온 것으로, 지난해 조 바이든 행정부 당시와 달라진 표현이 일부 들어갔다. 재무부는 “불공정한 환율 관행이 포착된 국가에는 대통령에게 관세 부과를 권고할 수 있다”고 적시했다. 또 “거시건전성 조치, 연기금·국부펀드를 활용한 환율 조정 등 시장 개입 외에 환율에 영향을 미치는 수단에 대한 감시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보고서는 한국의 국민연금과 관련해서도 지난해 외화 선물환 매입 한도를 20억달러 늘리고 한국은행과 외환스와프 한도를 150억달러 증액한 내용을 기술했다. 시장 관계자는 “앞으로 연기금과 국부펀드 등 정부 관련 기관이 외환시장에 주는 영향을 세밀하게 살펴보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는 환율보고서에서 대미(對美) 무역흑자, 해당국 경상수지 흑자, 외환시장 개입 등 세 가지 기준으로 교역 규모 상위 20개국을 평가한 뒤 심층분석 대상국(환율조작국) 또는 관찰대상국을 지정한다.

美 '국민연금 외환스와프' 이례적 지적…원화 절상 압박
美 상반기 환율보고서…통상협상 앞두고 한국에 경고

미국 재무부가 5일(현지시간) 발표한 ‘주요 교역상대국의 거시경제·환율정책 보고서(환율보고서)’는 환율을 의도적으로 개입하는 국가에 대해서는 관세로 보복할 수 있다는 경고를 명시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환율보고서엔 없었던 내용이다. 연기금이나 국부펀드를 통한 시장 개입을 면밀히 조사하겠다는 내용도 과거에 볼 수 없었던 표현이다. 한국에 대해선 해외투자를 위한 국민연금의 달러 매입 전략을 모니터링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냈다. 본격적인 관세와 환율 협상을 앞둔 미국 정부가 한국에 대해 원화 절상을 요구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국민연금 통한 시장 개입 조사

이날 발표된 환율보고서에서 가장 주목할 대목은 국민연금의 해외 투자와 관련한 언급이다. 세계 3위 공적 연기금인 국민연금은 분산 투자를 위해 해외 투자를 적극적으로 늘려왔다. 국민연금이 해외 투자 비중을 늘리려면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사야 하기 때문에 원·달러 환율이 상승(원화 가치 하락)한다.

환율보고서는 지난 2022년부터 국민연금 동향을 서술했지만 대체로 해외자산 규모를 정리하는 수준이었다. 이번 환율보고서는 달랐다. 국민연금에 대해 “외환 선물환 매입 한도 지난해 9월 10억달러에서 30억달러로 세 배 늘렸다”, “작년 12월 한국은행과의 외환스와프 한도를 500억달러에서 650억달러로 확대했다” 등 내용을 적시했다. 한은과의 외환스와프 확대에 대해선 “국민연금은 한국은행의 외화보유액을 차입해 해외투자를 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미국은 한국에 대한 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위해선 환율이 조정될 필요가 크다고 보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월평균 원·달러 환율은 작년 6월 1380원 13전에서 작년 12월 1434원 42전으로 반년 만에 54원 넘게 뛰었다. 고환율로 수출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면서 작년 대미 수출액이 사상 최대인 1278억달러까지 늘었고, 한국의 대미 무역수지 흑자도 566억3000만달러로 전년(444억7000만달러) 대비 27.3% 늘었다.

◇원·달러 환율 하락 받을 듯

시장은 환율보고서의 영향으로 원·달러 환율이 하락할 가능성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문홍철 DB금융투자 연구원은 “기초적인 경제 펀더멘털을 고려할 때 최근까지 원화 약세가 지나쳤다”며 “단기적으로는 환율 하락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문 연구원은 “채권 쪽에서는 환율 하락으로 금리 인하 여력이 생길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반론도 나온다. 국민연금의 해외 투자가 미국 정부의 이해관계에 부합하고 있어서다. 국민연금과 한은 간 외환스와프가 늘어나면 국민연금이 해외 투자할 때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직접 사지 않아도 된다. 원화 가치 하락(달러 가치 상승) 압력이 줄어든다는 의미다. 자국 제조업 육성을 위해 달러 약세를 원하는 미국 정부의 이해관계에 부합한다. 국민연금이 해외 투자를 위해 미국 자산을 매입하면 미 국채 금리를 낮추고, 주식 시장을 부양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그런데도 국민연금의 해외 투자, 외환스와프 전략을 명시한 것은 “한국의 동향을 면밀히 보고 있다는 시그널을 보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 안팎에선 한국은행이 한 분기의 시차를 두고 공개하는 분기별 시장안정조치(외환 거래액) 내역을 월별 공개로 변경하는 방안 등이 한미 환율 협상 과장에 거론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관세 보복’ 재차 강조

미국이 환율보고서에서 세계 각국을 향해 ‘환율 전쟁’에 대한 의지를 강조한 것도 과거와 달라진 모습이다. 미 재무부는 “불공정한 통화 관행을 해소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며 “의회가 대통령과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위임한 기존 관세 권한을 사용하도록 권고할 수 있다”라고 명시했다. 환율을 조작하면 관세로 보복할 수 있다는 것을 명기했다. 구체적으로, 외환 개입뿐만 아니라 연기금 또는 국부펀드가 환율을 조정하는 행위도 들여다보겠다고 밝혔다.

이광식/좌동욱 기자 bumer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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