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칼럼] 건설의 전환점, 모듈러는 산업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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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칼럼] 건설의 전환점, 모듈러는 산업이 될 수 있을까
[마켓칼럼] 건설의 전환점, 모듈러는 산업이 될 수 있을까
조정현 IBK투자증권 연구원

건설의 전환점, 모듈러는 산업이 될 수 있을까

2022년 광주 화정아이파크 붕괴, 2023년 검단신도시 건설현장 붕괴사고, 그리고 2025년 연초부터 연이어 발생한 건축현장 사망사고는 더 이상 단순한 현장 관리 실패가 아니라 건설업 전반의 구조적 위기를 드러내는 사건이다.

한국 건설업은 OECD 국가 중에서도 사망만인율이 가장 높은 수준이며, 고령화된 인력 구조와 낮은 자동화율, 상승하는 인건비 부담은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단편적인 안전대책이나 현장관리 개선만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한 수준이며, 결국 시공 방식 자체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그 해법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 바로 모듈러 공법, 즉 건설의 제조업화이다.

변화의 조짐: 제도, 현장, 투자에서 시작된 움직임

최근 국내 건설업계에서는 제도적, 실무적, 투자 측면에서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LH는 2024년부터 공공주택 사업에서 OSC(Off-site Construction) 확대 방침을 명확히 하며, 철근·콘크리트 위주의 재래식 현장 시공 방식을 탈피해 프리캐스트 콘크리트와 모듈러 방식의 공공주택 공급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최근 LH는 세종시와 부산 지역 등지에 모듈러 공공임대주택가 준공되었으며, 설계부터 시공까지 공장 기반 구조로 치환하는 실증 사업을 추진 중이다. 민간 부문에서도 일부 대형 건설사들이 유럽 중심의 모듈러 전문업체 인수를 통해 생산 기반을 선제적으로 확보하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공법 실험이 아닌, 산업 전환을 위한 구조적 투자로 해석된다.

구조적 배경: 왜 ‘제조업형 전환’이 필요한가
건설업의 구조 전환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다. 현재 건설업은 안전 리스크, 인력 구조의 불안정, 원가 구조의 고착화라는 삼중 구조적 한계에 직면해 있다. 2023년 기준 한국의 건설업 사망만인율은 21.8명으로, 미국(12.9명), 프랑스(9.7명)보다 2배 이상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현장에는 젊은 인력 유입이 줄어드는 반면, 고령 근로자와 외국인 노동자 의존도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동시에 최근 3년간 인건비 관련 비용은 꾸준히 상승하며, 노무비, 외주비 등이 자재비 상승률을 앞지르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러한 구조에서 사람을 더 투입하거나 관리 인력을 늘리는 방식은 실질적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결국, 사람을 덜 쓰고 공정을 표준화할 수 있는 시스템 전환, 즉 제조업 기반의 시공 방식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마켓칼럼] 건설의 전환점, 모듈러는 산업이 될 수 있을까
실현 조건: 반복 가능한 수요, 그리고 수출
모듈러 공법이 산업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반복 가능한 수요 기반과 규모의 경제 실현이 핵심 전제 조건이다. 이 점에서 공공주택 분야는 가장 적합한 실현 영역이다. 주거 단위의 평면과 외형이 일정하게 유지되며, 대량 발주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공장 기반 생산 시스템을 적용하기에 유리하다. 실증 사례로는 천안두정 모듈러 공공임대주택이 있다.

신현규, 함희래, 장활재 and 안용한. (2019). LCC분석을 통한 모듈러 공공주택의 경제성분석 -천안두정 모듈러 공공주택사례를 중심으로-. 한국퍼실리티매니지먼트학회지, 14(1), 15-24.에 따르면, 해당 사례에서 모듈러 방식의 직접 공사비는 RC공법 대비 14.6% 높았으나, 간접공사비, 운영비, 폐기비용 등을 포함한 총 생애주기 비용은 오히려 34.3% 낮게 나타났다.

특히 580세대 이상의 대형 프로젝트에서는 공장형 생산 구조의 단가 절감 효과가 본격화되며, 모듈러의 경제성이 실현되기 시작한다는 분석도 함께 제시되었다.

해외 시장에서도 모듈러 공법, 특히 목조 모듈러를 중심으로 수출 산업화 가능성이 점차 부각되고 있다. 북미와 북유럽은 단독주택 중심의 주거 구조를 가지고 있고, 현지 인건비가 높으며 숙련공 확보가 어려운 환경에 있다. 이로 인해 공장에서 제작된 유닛을 수입해 현지에서 조립하는 형태는 실질적인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으며, 고정된 단가 체계와 공정 단축 효과는 기존 B2B 수출 방식보다 높은 수익성을 기대할 수 있는 구조로 평가받고 있다.
[마켓칼럼] 건설의 전환점, 모듈러는 산업이 될 수 있을까

결론: 모듈러는 ‘기술’이 아니라 ‘구조’다

건설업은 지금 기술 혁신이 아니라 ‘구조 전환’이라는 더 큰 과제 앞에 서 있다. 반복 가능한 수요 기반, 공장 기반 생산 시스템, 해외 시장으로의 확장 가능성이라는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될 경우, 모듈러는 하나의 산업으로 독립할 수 있다.

모듈러는 단순한 트렌드가 아닌, 인력 리스크를 줄이고 생산성을 높이는 유일한 구조적 해법일 수 있다. 향후 건설업 내에서는 이 전환에 얼마나 빠르게, 전략적으로 대응했는지가 기업 간 가치 격차를 만들어낼 것이다. 이제는 "어떻게 지을 것인가"가 아닌,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