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생태계의 핵심 축인 인수합병(M&A) 시장이 빠르게 얼어붙고 있다. 대기업의 인수 여력이 줄어든 데다 한때 스타트업 인수의 ‘큰손’이던 네이버, 카카오 등 플랫폼 기업까지 확장에 제동을 걸면서다. 투자금 회수의 주요 통로인 M&A가 막히자 자금 순환이 멈춰 폐업과 법적 분쟁도 속출하고 있다.
◇ M&A 회수 비율 5년 새 최저
29일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스타트업 자금 회수 수단 중 M&A 비중은 38.0%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42.7%)보다 4.7%포인트 낮아졌고 2022년(56.5%), 2023년(50.2%)과 비교하면 하락 추세가 더욱 뚜렷하다. 이는 최근 5년 내 최저 수준이다.
M&A 시장이 막힌 건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인수 여력이 눈에 띄게 축소됐기 때문이다. 고금리 기조가 지속되고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자 기업은 외형 확장보다 비용 절감, 비핵심 자산 매각, 사업 구조조정 등에 집중하고 있다. 한국M&A거래소(KMX)에 따르면 2024년 국내 대기업의 M&A 투자 규모는 8조5808억원으로 전년(14조1297억원) 대비 39.3% 줄었다. M&A 건수도 같은 기간 87건에서 50건으로 42.5% 감소했다. 한 벤처캐피털(VC)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시장 선점과 외형 확장을 위한 전략적 인수가 활발했지만 현재는 스타트업의 업사이드(성장 잠재력)에 대한 확신 자체가 부족하다”며 “불확실한 시장 환경에서 인수 주체들이 보수적으로 돌아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스타트업 인수의 큰손이던 플랫폼 기업조차 최근 M&A에 소극적이다. 2021년까지 공격적인 M&A로 사업을 확장한 카카오, 네이버, SK 등은 최근 사회적 여론과 규제 리스크를 의식해 신중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특히 카카오는 2021년 기준 계열사가 194개로 5년 새 두 배 이상 증가했지만 올해 104개까지 줄이는 등 비핵심 계열사 매각과 사업 구조조정에 힘쓰고 있다.
◇ 회수 길 끊기자…“생존 위기”
문제는 회수 시장 위축이 단기 침체되는 것을 넘어 생태계 구조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는 점이다. VC업계는 회수 채널의 다양성이 사라지고 있는 점을 가장 우려한다. VC는 펀드 만기 시점에 회수를 통해 재투자해야 하지만 매수자를 찾기 어려울 때 신규 투자 여력도 줄어든다는 것이다.
M&A 부진을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의 구조적 한계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한국에는 사실상 스타트업 M&A 시장이 존재한 적이 없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은 “한국은 재무적 투자자(FI) 중심의 단기 수익 구조에 갇혀 있고, 전략적 인수 주체인 대기업·중견기업을 끌어들일 만한 매력과 인프라가 형성돼 있지 않다”고 분석했다. 정책당국조차 생태계 전체 구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투자 유치에 이어 회수 경로까지 막히자 스타트업은 생존 위협을 받고 있다. 벤처투자 플랫폼 더브이씨에 따르면 지난해 폐업한 기존 투자 유치 스타트업은 170곳으로 2023년(144곳)보다 18.0% 늘었다. 2021년 104곳, 2022년 126곳 등으로 3년 연속 증가세다. 한 스타트업 창업자는 “‘투자→성장→인수→재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 고리가 끊기면서 창업자의 엑시트 전략이 무너지고 있다”며 “자금난으로 임금 체불, 내홍, 창업자·투자자 간 법적 분쟁으로까지 번지고 있다”고 말했다.
VC업계는 세컨더리 펀드, 구주 거래 활성화 등 현실적인 보완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한 국내 VC 심사역은 “회수 경로가 완전히 끊기기 전에 정부의 세컨더리 펀드 출자 확대 등 제도 기반을 보완해줄 필요가 있다”며 “이런 조치가 M&A 시장의 활력을 완전히 되찾긴 어렵더라도 선순환 구조를 지탱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