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당국이 정전을 막기 위해 전기 출력량을 줄인 날이 올 들어 30일을 넘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발전량이 들쑥날쑥한 태양광 비중이 급증해 생긴 부작용이다. 지난 4월 발생한 스페인 대정전 사태가 남의 일이 아닐 수 있다는 우려가 정부 안팎에서 나온다.
올해는 봄비 덕분에 버텼지만…'태양광發 대정전' 언제든 닥칠 수도
30일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2023년 이틀, 2024년 27일이던 출력제어 일수(제주 제외)가 올 들어 4월 말까지 31일에 달했다. 출력제어는 전력거래소가 전기 수급의 균형이 깨지거나 주파수가 불안정할 때 전력망에 접속한 발전소에 전력 공급을 줄여달라고 요청하는 제도다. 전기가 과잉 공급되는 봄·가을철 ‘경부하기’에 집중된다. 겨울철에 비해 태양광 발전량은 급증하고 냉난방 등에 필요한 전기 수요는 급격히 줄어드는 시기다.

출력제어를 통해 수급 불균형을 제때 조정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정전이 발생할 수 있다. 최근 태양광 발전설비 용량이 매년 3기가와트(GW) 안팎 추가돼 출력제어 빈도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정부 안팎에서는 봄비가 잦아 태양광 발전량이 상대적으로 적은 올해는 그나마 선방했지만, 내년 봄은 정전 사태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한 전력업계 관계자는 “전기는 실시간 수요와 공급이 일치해야 정전 사고를 줄일 수 있다”며 “우리가 항상 고민해온 사태가 지난달 스페인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태양광 발전으로 과잉 생산된 전기를 저장해두는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서둘러 확충하고, 전력 계통에 부담을 주는 태양광발전사에 망 이용료를 부과하는 등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전력업계 관계자는 “스페인 대정전 이후 전 세계적으로 전력 시스템의 관성 확보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며 “대표적 ‘관성 전원’인 원자력의 역할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태양광發 전력수급 불균형…국내서도 블랙아웃 우려
태양광 설비 10년 새 15배 ↑…전력 안정성 높일 방안 시급

“지난 4월 발생한 스페인 대정전은 남의 얘기가 아닙니다. 내년 봄에는 우리도 손을 못 쓸 수 있어요.”

최근 전력당국 안팎에서 자주 나오는 얘기다. 봄철 전기 수요는 줄어드는데 태양광 발전량이 급증해 전력망에 부담을 주는 일이 반복되면서다. 이때 수급을 안정시키지 않으면 대규모 정전이 발생할 수 있다. 정부가 출력제어를 통해 전력 수급 불균형을 가까스로 관리하고 있지만, 해가 갈수록 대응이 어려워지고 있다. 밤과 낮,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들쑥날쑥한 태양광 발전설비 용량은 지난 10년 사이에 15배가량 늘었다.

◇“비가 와야 안심되는 상황”

30일 산업통상자원부와 전력업계 등에 따르면 2023년 연중 이틀에 불과하던 출력제어 일수가 올해 적어도 50일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지난 4월까지 이미 31일에 달했기 때문이다. 출력제어는 정전 위기를 막기 위해 정부가 각 발전소에 발전량을 줄이라고 요청하는 제도다. 망으로 연결된 전기는 실시간 수요량과 발전량이 거의 일치해야 정전 없이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

전력업계에선 올봄은 그나마 비가 자주 온 데다 출력제어를 대폭 늘린 덕에 ‘정전 위기’를 겨우 버텼다는 얘기가 나온다. 특히 5월에는 주말마다 비가 오거나 안개 및 구름 낀 날씨가 잦아 태양광 발전량이 급격히 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력업계 관계자는 “매주 주말 비 소식이 있으면 마음 놓고 휴일을 보낼 수 있을 정도로 봄철은 ‘비상 시즌’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전기 수요는 원래 계절별 차이가 크고, 하루 중에도 시간대에 따라 달라진다. 주말엔 전력을 많이 쓰는 공장 가동률이 떨어지고 사람들도 외출해 수요가 대폭 줄어든다. 문제는 최근 태양광 발전이 급격히 늘면서 공급 측면의 변동성도 커지고 있는 점이다. 태양광 발전량은 한낮에는 급증하고 해가 지면 ‘제로(0)’가 되기 때문이다.

가정에 설치되는 소규모 태양광 자가 발전 설비가 수요 변동성을 더 키운다는 지적도 나온다. 해가 뜨면 자체 생산 전기를 쓰면서 시장 수요를 줄였다가 밤이 되면 다시 기존 전력망에 접속해 전기를 꺼내 쓰기 때문이다. 이런 ‘계통 밖 자가 발전’이 늘어날수록 전력당국의 실시간 수요 예측은 더욱 어려워진다.

◇주요 전원 된 태양광, 책임도 지워야

한국 태양광 발전설비 총용량은 지난해 말 기준 27.1GW(기가와트)에 달해 전체 발전설비 용량(153.1GW)의 17.7%를 차지했다. 2014년 1.8GW에서 약 15배 늘었다.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내년에만 새로 추가될 태양광 설비 용량은 5.9GW에 달한다. 2028년이면 전체 용량이 36GW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매 연말 집계하는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의 발전량 비중은 지난해 10.6%로 사상 처음으로 10%대를 넘어섰다.

4월 28일 스페인 대정전은 과도한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주범으로 꼽힌다. 스페인에서 재생에너지를 통해 발전·소비하는 전력 비중은 통상 60% 안팎인데, 정전 당일엔 태양광 발전량 비중만 80%에 육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스페인은 유럽 대륙 전력망과 연결돼 평소엔 남아도는 전기를 인접국에 수출하는 방식으로 버텼음에도 문제가 생긴 것”이라며 “한국은 전력망을 이웃 국가와 연결할 수 없는 ‘전기의 섬’이어서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이 10%만 넘어서도 위험하다”고 설명했다.

김진수 한양대 자원환경공학과 교수는 “태양광의 변동성을 보완할 에너지저장시스템(ESS) 등 유연성 자원을 서둘러 확보해야 한다”며 “태양광이 ‘메이저 전원’이 된 만큼 사업자에게 전력망 안정성에 관한 책임을 지우는 방안이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정부는 540㎿(메가와트) 규모 배터리 ESS를 설치해 전력거래소 지시에 따라 전기를 충·방전하는 중앙통제형 ESS 보급 계획을 밝혔다. 민간 ESS 대신 전력망 안정을 위한 ‘국가급 ESS’를 본격 도입하는 게 핵심이다. 정부는 또 출력제어 요청을 이행하지 않는 태양광 사업자에 과징금을 부과하는 방안도 마련하기로 했다.

김리안/김대훈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