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프랑스대사관 보안검색대를 지나 경내로 들어서면 정면에 보이는 ‘김중업관’(왼쪽).  최혁 기자
주한프랑스대사관 보안검색대를 지나 경내로 들어서면 정면에 보이는 ‘김중업관’(왼쪽). 최혁 기자
서울 서대문구 합동에 있는 주한프랑스대사관. 두꺼운 철문과 보안 검색대를 지나자 콘크리트 지붕이 한옥의 처마처럼 하늘로 뻗은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 현대 건축의 선구자이자 프랑스 건축 거장 르코르뷔지에의 유일한 한국인 제자인 고(故) 김중업 선생이 설계한 ‘김중업관’이다. 필립 베르투 주한프랑스대사(54)는 “김중업관이야말로 한국과 프랑스 간 협업의 상징”이라며 “이 건물처럼 제조업, 재생에너지,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하길 바란다”고 했다. 한국과 프랑스는 내년 6월 4일 수교 140주년을 맞는다. 지난달 26일 주한프랑스대사관에서 베르투 대사를 만났다.
필립 베르투 주한프랑스대사가 지난달 26일 서울 서대문구 합동 주한프랑스대사관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베르투 대사는 “내년 한국·프랑스 수교 140주년을 맞아 양국 간 협력이 확대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혁 기자
필립 베르투 주한프랑스대사가 지난달 26일 서울 서대문구 합동 주한프랑스대사관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베르투 대사는 “내년 한국·프랑스 수교 140주년을 맞아 양국 간 협력이 확대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혁 기자
▷대사로 취임한 지 2년이 다 돼가네요.

“2023년 7월 부임했으니 벌써 그렇게 됐네요. 입국 전에 전직 주한프랑스대사를 포함해 한국을 거쳐간 많은 외교관에게 조언을 구했는데, 다들 ‘한국은 외교관으로서 균형 잡힌 업무를 할 수 있는 나라여서 참 좋다’고 하더군요. 외교, 안보, 경제, 문화, 인적 교류 등 다양한 일이 양국 간에 일어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예상치 못한 한국 정치의 변화무쌍함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계엄 때 깜짝 놀라셨겠군요.

“당시 프랑스대사관도 긴급회의를 했죠. 프랑스 외교부뿐 아니라 대통령실까지 대사관에 ‘어떻게 된 상황이냐’고 문의하며 사태 파악에 분주했습니다. 지금은 상황이 안정돼서 다행입니다.”

▷이전에 한국과 인연이 있었나요.

“2019~2023년 프랑스 외교부 전략·안보·군축국장을 맡았을 땐 안보 협력 문제로 한국을 찾았습니다. 그렇게 한국과의 인연이 시작됐고, 점점 한국에 매력을 느꼈죠. 대사로 부임하게 된 것은 저에게 정말 큰 영광입니다.”

▷대사관 지붕이 눈에 띕니다.

“이 건물(김중업관)은 한국과 프랑스의 협력을 상징하는 공간입니다. 1962년에 지어졌는데요. 한국의 유명 건축가 김중업 선생이 스승인 프랑스 건축대가 르코르뷔지에의 제안을 받아 설계했습니다. 중간에 한 차례 변형됐는데, 설계 당시 원형으로 복원하기 위해 2018년 리모델링을 해 2023년 재개관했습니다. 저는 그 직후 부임해 이 아름다운 건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큰 행운이죠.”

▷시민들도 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요.

“서울에는 1960년대 건축물 중 오늘날까지 보존된 건물이 많지 않은 만큼 이 건물을 최선의 방식으로 보존해야 할 책임을 느낍니다. 이 건축물을 우리만을 위한 공간으로 두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지역 주민을 위해 월 1회 대사관 개방 프로그램을 운영하려고 합니다. 방문객들이 건축물을 보고 놀라는 얼굴을 볼 때마다 저희도 기쁨과 자부심을 느낍니다.”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발효(2011년) 후 한·프랑스 간 교역량이 두 배로 늘었습니다.

“교역의 양과 질 모두 발전했다고 생각합니다. 흔히 양국 간 교역은 명품이나 와인 같은 농식품 분야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제조업이 양국 협력의 발판입니다. 금융, 테크 분야도 마찬가지고요.”

▷양국 경제 협력 중 어떤 분야에 역점을 두고 있나요.

“한국의 프랑스 직접투자 확대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프랑스는 유럽 국가 중 6년 연속 해외투자 유치 1위에 올랐습니다.”

▷투자 측면에서 프랑스는 어떤 매력이 있나요.

“프랑스는 여러 개혁을 통해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만들었습니다. 지역별로는 세계적인 연구기관과 투자유치를 위한 다양한 인센티브 제도가 있습니다.”

▷양국 간 유망한 협업 분야는 뭘까요.

“대표적 분야가 인공지능(AI)과 양자컴퓨팅입니다. 양자컴퓨팅 기업들은 한국을 인도·태평양 지역 진출의 거점으로 삼고 있습니다. 항공우주산업도 기대되는 분야입니다. 한국은 에어버스를 구입하는 고객이지만 동시에 에어버스는 많은 항공 부품을 한국에서 조달받죠.”

▷에너지 분야는 어떻습니까.

“수력, 풍력, 전기차 등 탈탄소 부문에서 협력 여지가 있습니다. 프랑스에서 공급되는 에너지의 95%가 탈탄소 부문에서 나옵니다. 프랑스 에너지 기업이 한국에서 해상풍력 단지 조성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의 체코 원전 수주에 프랑스가 이의를 제기한 건 어떻게 봐야 하나요.

“제3국(체코) 법원에서 결정한 사안에 제가 코멘트하는 건 적절치 않습니다. 다만 원자력 분야에서 양국 간 협력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합니다. 프랑스 기업들이 원자력 발전 연료인 우라늄을 한국에 공급하거든요. 핵연료 수급 다변화, 사용후핵연료 관리 등에서 양국의 협력 잠재력이 큽니다. 소형모듈원자로(SMR),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등에서도 협력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3년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프랑스와 유럽의 안보는 한국의 안보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습니다. 북한이 우크라이나전에 참전한 걸 보세요. 북한군의 참전이 유럽에 직접적 위협이 되고 있을 뿐 아니라 한국에도 위협을 가하고 있습니다. 북한군은 실제 현대전을 경험하게 됐고 드론, 전술 기동 등 새로운 군사 능력을 습득할 수 있었으니까요. 러시아에서 받는 반대급부까지 고려하면 북한군의 참전은 한국 안보에도 중대한 위협입니다.”

▷불확실한 안보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다자주의를 회복하고, 방위력과 억지력을 키우고, 양국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안보 위협에 대응해야 합니다.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을 때야말로 새로운 협력 관계를 구축할 좋은 기회입니다. 불확실성이 커진 지금, 한국과 프랑스의 전략적 연대가 필요합니다.”

▷프랑스는 문화강국입니다. 한국 문화는 어떤가요.

“프랑스에서 한국 문화는 영화, 드라마, 웹툰, 문학 등 모든 분야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올해 초 (프랑스 병원 재단이 아동·청소년을 위해 기금을 모금한) 옐로 코인 갈라에 K팝 가수 로제와 지드래곤, 제이홉이 참석했을 정도입니다. 이런 영향력은 프랑스에서 한국어의 인기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프랑스 국립동양어문명학교(INALCO·이날코)의 한국어 학위 프로그램 정원이 150명인데, 1800명이 지원했다고 합니다. 일본어나 중국어 지원자보다 훨씬 많았죠. 지난해 한국으로 유학 온 프랑스 학생은 1600명에 달했습니다.”

▷한국도 프랑스 문화에 긍정적입니다.

“양국의 문화적 유대는 매우 긴밀합니다. 한국에서도 프랑스 문화를 매우 다양하게 접할 수 있어요. 지난 4월엔 프랑스 국립오케스트라 공연이 열렸고 이번달엔 파리오케스트라 공연이 열릴 예정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선 프랑스 케브랑리박물관과 공동 주최한 ‘마나 모아나 전시’가 진행 중이고, 예술의전당에서는 ‘마르크 샤갈 특별전’이 개최되고 있습니다.”

▷내년은 한국과 프랑스가 수교한 지 140년이 됩니다.

“한국·프랑스 수교 140주년인 내년엔 양국 간 협력이 더 돈독해질 겁니다. 지난달 20일 파리에서 양국 문화부 장관 회의를 열고 공식적으로 수교 140주년 기념행사 준비를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문화 다양성 수호, AI 시대 문화 분야 적응 등 공동의 과제를 추진하려고 합니다.”

▷주말에는 보통 뭘 하시나요.

“저는 주로 파리에서 자랐지만 제 가족은 프랑스 중부 산악지대 출신입니다. 그래서인지 서울의 산세를 보면 왠지 모르게 고향에 온 것 같은 친근함을 느끼고 마음이 편해집니다. 저는 서울을 정말 사랑합니다. 서울은 동네마다 각기 다른 매력을 지녀 참 흥미로워요. 아내, 막내딸과 함께 서울에 거주 중인데, 주말이면 등산을 가거나 미술관, 카페, 박물관을 찾아다니면서 서울과 한국의 이곳저곳을 즐기고 있습니다.”

베르투 대사는

프랑스 외교부에서 전략문제·안보·군축국장을 지낸 다자외교 전문가다. 2012~2016년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서 간사로 활동했다. 1971년생으로 프랑스 고등경제상업학교(ESSEC), 파리정치학교(IEP), 국립행정대학원(ENA)을 졸업했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대표부 주재 대사를 지냈고 2023년 7월 주한 프랑스 대사로 부임했다. 부인과 함께 딸 셋을 두고 있다. 한국에선 부인, 막내딸과 살고 있다

한경제 기자 [email protected]